많은 사람들에게 PTSD(..)를 일으켰던 드라마 D.P의 시즌1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존재는 아마 한호열 상병일 것이다.
한호열 같은 선임이 나와 군생활을 함께 했다면 존재 그 자체로도 든든한 버팀목이며
삭막한 군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지지대 역할을 해줄 수 있었겠지만
군대라는 곳은 이미 많은 이들이 겪어봐서 알듯이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현실에서 한호열 상병 같은 인물은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든 걸까?
본능의 문제
군생활을 하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일, 이등병 시절에 선임의 이유 없는
폭언과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며 거기에는 한호열 상병 같은
사람도 예외일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피해 갈 수 없는 불가항력의 영역이다.
문제는 이것이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무의식적인 본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당연히 정당화될 수 없지만
말 그대로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지배욕과 같은 본능과도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라
후임 시절에 "나는 선임되면 애들한테 잘해줘야지"와
같은 다짐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게 본능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성향이 있기 때문에
다 똑같지는 않다. 군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선임 한, 두 명은 분명 경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이유는 위와 같은
본능을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 좋은 동네형이
나중에 소문으로 들어보니 군 시절 악마였다는 것도
이런 이러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조의 문제
첫 번째 내용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상명하복" 시스템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 시스템이 군대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의 원흉이지만
그것이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며
군대라는 조직에서 상명하복이 없어지면
군대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기가 힘들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오가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수평적인 구조보다 수직적인 구조가 훨씬 더 빠르고,
조직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군대는 물론이고 회사와 같은 여러 집단에
있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부분이며
당연하지만 군대의 병사들 사이에서도
이것은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지 않고 한호열 병장과 같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수평적으로 대하는 구조가
전체적으로 자리 잡게 되면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필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계급 구분 없이 집단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이에 따라 필요할 때에 상호 협력하에 문제를 해결하면
다툼이 생길일이 없겠지만 현실은 다들 알다시피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날 수 없고,
이 딜레마의 가장 확실한 대안은 상명하복 말고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군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명확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몇십 년 전 군대나 지금이나
매번 똑같은 문제로 이슈가 일어나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군대에서 한호열 상병과 같은 인물들이 극히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